Двуязычие
: 이중언어
[중층언어, 이중언어, 표준어-방언] 퍼거슨(C.A. Ferguson)의 중층언어론을 고대러시아에 적용한 우스펜스키(Б.А. Успенский)는 중층언어, 이중언어, 그리고 표준어와 방언이 공존하는 상황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1) 중층언어는 통상 문자의 전통이 종교의 도입과 포교 목적을 위하여 형성된 경우에서 흔히 발견되는 상황이므로, 문어가 종교어가 된다. 종교어는 정제되고 규범을 지닌 언어로 인식되며 종교적 영역이나 공적이고 격식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만 사용될 뿐, 일상생활의 의사소통 수단으로는 기능하지 않는다.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일상어가 사용된다. 표준어와 방언이 공존하는 상황에서는 일상적 의사소통에 방언을 사용할 수 있지만, ‘바르게’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방언이 아니라 표준어를 사용한다. 바로 이것이 중층언어를 표준어-방언이 공존하는 사회와 구분하는 특성이다. (2) 중층언어에서는 비표준어인 일상어는 특별한 교육과정을 통해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주변의 일상적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일차적인 언어로, 문법화가 불가능하다. 반면 표준어는 규범적인 문법을 규정하고 체계화하여 의식적인 학습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는 언어이다. 이 때문에 표준어가 상위어(высокий язык)로, 일상어가 하위어(низкий язык)로 인식되고 전자가 후자에 대해 권위를 갖는다. 이와는 달리, 이중언어에서 공존하는 두 언어, 예를 들어, 캐나다 퀘벡주의 영어와 프랑스어는 대등한 관계로, 상호 무관하게 의식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독자적으로 습득된다. 또한 두 언어 모두 공식적 표준어로 인정된다. (3) 중층언어에서 두 언어는 사용 영역이 엄격히 구분되어 겹치는 부분이 없다. 즉 두 언어는 기능상 상보적 분포 관계에 있으므로, 언어집단 내부에 있는 언중에게는 두 언어가 하나의 언어로 인식되지만, 언어학자나 언어집단 외부에 있는 관찰자에게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언어체계로 보인다. (4) 상보적 분포 관계에 있다는 것은 두 언어가 모두 사용될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언어로 쓰인 텍스트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특히 성스러운 종교의식에 관한 텍스트가 일상어로 번역된다든지, 우스꽝스러운 풍자적 내용이 종교어로 번역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와 달리 이중언어는 두 언어가 상하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에 있으므로 동일한 내용을 두 언어로 각각 작성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 퀘벡주에서 영어 텍스트를 프랑스어로 번역하거나, 혹은 반대의 경우가 가능하다. 우스펜스키는 위 세 특성 중 어느 하나라도 파괴되었을 때 그 언어적 상황은 더 이상 중층언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교회슬라브어-러시아어 중층언어] 우스펜스키는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하며, 11-17세기 고대러시아의 언어적 상황이 위에서 서술한 중층언어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1) 고대러시아에서 공식적인 종교어인 교회슬라브어는 일상어인 고대러시아어와 대립하였고, 이 두 언어는 사용 영역이 겹치지 않는 상보적 분포 관계에 있었다. 교회슬라브어는 예배문, 성서, 성례 등에 관한 종교적 문헌에, 러시아 종족어는 비종교적 영역인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즉 두 언어가 동시에 사용되는 영역이 없었으므로, 고대러시아 문헌 중 동일한 내용이 교회슬라브어와 러시아 종족어로 쓰인 문헌은 존재하지 않는다. (2) 교회슬라브어는 정제되고 규범적 언어였으며, 일상생활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이것은 고대러시아의 언어적 상황이 표준어-방언 상황이 아님을 의미한다. (3) 기독교의 도입과 함께 생긴 수도원이 교회슬라브어를 습득하는 교육기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교회슬라브어를 배우는 것은 종교적 진리에 도달하는 신비의 길로 이해되었으므로, 기도법으로 시작하여 성서를 읽고 암송하고 기도문 작성법을 배웠다. 반면 러시아 종족어를 습득하기 위해 그 어떠한 특수한 교육이 행해졌다는 사료는 없다. (4) 고대러시아에서 교회슬라브어는 규범을 갖춘 언어이므로 언어집단에 의해 ‘옳은’ 언어로, 러시아 종족어는 규범에서 이탈하여 올바른 언어 행위를 파괴한 언어로 인식되었다. 이 두 언어는 문어-비문어, 규범어-비규범어, 상위어-하위어, 문화화-비문화어, 신성어-세속어의 대립이었다. 따라서 교회슬라브어는 사회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것을 표현하는 도구이지만, 러시아 종족어는 사회문화적 가치와 무관한 영역에서 기능하는 언어로 인식되었다. (5) 중층언어에서는 두 언어가 기능적으로 경쟁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상보적 분포 관계에 있다. 이 때문에 중층언어 상황은 수 세기 동안 유지될 정도로 대단히 안정적인 언어 상황이다. 고대러시아에서도 중층언어는 11세기부터 시작하여 17세기까지 유지되었다.
[교회슬라브어-러시아어 이중언어] 위에서 서술한 중층언어적 특성에 해당하던 11-17세기 고대러시아의 상황은 17세기 말 이중언어로 이행한다. 이때 중요한 계기가 된것은 14세기 중반-16세기 제2차 남슬라브어 영향이다. 교회슬라브어 정화 운동이자 활성화 정책이었던 제2차 남슬라브어 영향의 핵심은 교회슬라브어를 초기 상태로 복원하고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범슬라브어적인 종교어를 형성하고자 하였다. 당시 문헌가들의 관점에 따르자면, 그동안 러시아 종족어적 요소가 교회슬라브어로 대거 유입되며 교회슬라브어가 오염되었고 권위가 하락하였다. 러시아 종족어적 요소를 제거하고 교회슬라브어를 초기 상태로 고어화하여 적극적으로 사용해야만 상실한 권위를 되찾을 수 있다. 교회슬라브어에서 길고 복잡한 복문으로 구성된 통사구조, 수사학적으로 더욱 치장된 텍스트, 언중의 언어 의식에서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문법 형태, 수 세기 전에 사어가 된 어휘 등이 다시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적 고어화는 성서나 예배문, 혹은 성자전과 같은 엄격한 교회슬라브어 텍스트에만 통용되었을 뿐이다. 오히려 교회슬라브어의 활성화 정책 결과는 교회슬라브어의 사용 영역을 확장하여 학문적 문헌, 세속적인 문학작품, 편지, 일상생활에 관한 문서들도 교회슬라브어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이제 교회슬라브어는 종교어의 틀을 벗어나, 서유럽의 라틴어처럼 학문어이자 식자층의 언어가 되었다. 수도원에서는 교회슬라브어로 대화하고, 식자층은 교회슬라브어로 토론하며 문법책을 토대로 교회슬라브어를 체계적으로 교육받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교회슬라브어의 기능이 확대되고, 특히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되며 언중의 언어 의식에서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던 교회슬라브어적 요소들이 익숙한 러시아 종족어 형태로 대체되었다. 교회슬라브어가 훨씬 단순해지며, 더 많은 언중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쌍수형이 복수형으로, 호격이 주격으로, 2인칭 단수 아오리스트나 임퍼펙트가 л-형태로, 독립여격 구조가 접속사 절로 바뀌었다.
이와 같은 제2차 남슬라브어의 영향 이후 교회슬라브어는 최소한 다음 두 유형으로 세분되었다. (1) 엄격한 교회슬라브어 (상문어); 의식적으로 고어화하고, 수사학적으로 미화하며 초기의 문법적 규범을 철저히 준수함, (2) 단순화한, 혹은 혼합적 교회슬라브 (일상문어); 비문어인 러시아 종족어 요소를 수용하며 문체상, 문법상 교회슬라브어 규범을 일관되게 견지하지 못함.
언중은 엄격한 교회슬라브어와 단순화한 교회슬라브어를 교회슬라브어라는 문어적 틀 안에 있으므로 교회슬라브어의 문체적 이형으로 인식하였고, 전자는 상문어로, 후자는 일상문어로 간주하였다. 일상문어는 교회슬라브어의 기본적인 문법적 요소들을 사용함으로써 비문어인 러시아 종족어와 구분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체가 단순하고 수사적으로 미화되지 않음으로써 상문어와 구분되었다. 언중은 상문어(엄격한 교회슬라브어)-일상문어(단순화한 교회슬라브어)를 세련-기본적인 언어 행위의 대립으로, 그리고 일상문어(단순화한 교회슬라브어)-비문어(러시아 종족어)는 옳은-옳지 않은 언어 행위의 대립으로 인식하였다.
일상문어는 사회 전 영역으로 기능을 확대하며 상문어와 비문어라는 양극의 사이에 있었다. 상문어는 엄격한 교회슬라브어 텍스트에만 사용되었던 반면, 일상문어는 특별히 문어적이지도, 또 비문어적이지도 않은 중립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언어생활의 중심을 차지하였다. 일상문어가 언어생활의 중심을 차지하며 더 많은 언중을 상대하였기 때문에 구어적 요소를 더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언중은 일상문어를 러시아 종족어가 아니라 교회슬라브어의 틀 안에 있는 규범적이고 정제된 언어로 인식하였고 상문어와 대등한 언어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상문어와 일상문어가 교회슬라브어의 두 이형이 아니라 서로 대등한 두 언어로 인식되었다. 바로 이 지점이 중층언어에서 이중언어로 이행한 시기이고, 이 시기가 17세기 후반이다. 17세기 후반 고대러시아의 이중언어적 상황을 시사하는 구체적 현상들은 다음과 같다. (1) 성례에 관한 엄격한 교회슬라브어 텍스트가 더 많은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단순화한 교회슬라브어로 번역된 텍스트들이 다수 발견된다. 두 언어로 쓰인 같은 내용의 텍스트가 나란히 존재한다는 것은 이 두 언어의 기능이 서로 대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 교회슬라브어로 쓰인 술주정뱅이의 기도나 풍자적 찬송가 등도 중층언어의 와해를 보여주는 텍스트이다. 중층언어에서는 불가능했던 위와 같은 텍스트들은 17세기 후반에 들어서며 흔한 현상이었다. (3) 이중언어는 중층언어와 달리 공존하는 두 언어가 서로 경쟁 관계에 있으므로 불안정한 상황이다. 18세기에 접어들며 상문어의 사용 영역은 엄격한 교회슬라브어 텍스트에 제한되며 문체의 한 유형으로 고착되었다. 반면 일상문어는 끊임없이 교회슬라브어 요소를 러시아 종족어 요소로 대체하고 언어생활의 전 영역을 포괄하며 러시아의 규범어이자 중심어로 자리매김하였다. 다시 말해, 대등한 위치에 있던 상문어와 일상문어의 관계가 변화하였다. 문체적 한 유형으로 인식된 상문어가 교회슬라브어의 규범이 엄격히 준수되는 영역으로 사용이 제한되고, 일상문어가 사회의 많은 영역에서 사용되며 문어의 중심에 위치하게 되었다. 즉 17세기 후반 중층언어에서 이중언어로 이행한 고대러시아의 언어적 상황은 18세기에 이중언어가 와해되었다. 이처럼 중층언어와는 달리 이중언어 상황은 단지 수십 년간 지속되었을 뿐이다. 요약하자면, 고대러시아의 교회슬라브어-러시아어 중층언어가 17세기 말 이중언어로 이행하고, 18세기에 접어들며 이중언어 상황이 와해되었다.
연관 표제어
중층언어(диглоссия, diglossia), 제2차 남슬라브어 영향(второе южнославянское влияние, second south slavic language influence), 교회슬라브어(церковнославянский язык, church slavic), 고대러시아어(древнерусский язык, old russian)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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