Калька

: 번역차용어

[특징] 번역차용어는 보통의 어휘적 차용어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차용어이다. 어휘적 차용은 ‘특정 소리 조합과 그 소리 조합이 표현하는 의미’의 단일체로서의 단어의 차용이라면, 번역차용은 소리 조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외국어 단어의 구성 혹은 의미만을 차용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외적으로는 차용어의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휘적 차용어와 마찬가지로 번역차용어도 외국어 단어를 원형으로 하는 까닭에 차용어의 일종으로 간주된다.

어휘적 차용과 번역차용은 모두 언어들 간 접촉과 상호작용으로 인해 어떤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언어 요소가 이동되는 것이지만 주요 발생원인은 다소 상이하다. 어휘적 차용은 사물이나 개념의 도입과 함께 이를 지칭하는 단어의 유입을 주요 발생원인으로 한다면 번역차용은 어휘적 차용어의 범람에 대한 위기의식의 고조, 사회적 공감대의 형성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곤 한다.


[유형 구분] 만드는 방식에 따라 다음과 같은 하위 유형으로 나뉜다.

- 조어적 번역차용어(словообразовательная калька)

- 의미적 번역차용어(семантическая калька)

- 부분적 번역차용어(полукалька)

- 성구적 번역차용어(фразеологическая калька)

- 부정확한 번역차용어(ложная калька)


[조어적 번역차용어] 번역차용어의 대표적 유형 중 하나인 조어적 번역차용어는 외국어의 조어 구성을 따온 차용어이다. 외국어 단어의 구성 요소를 형태소 대 형태소로 번역함으로써 만들어진다.


(1) 러시아어                                 원어

развитие ‘발전’                      Entwicklung (독일어)

наречие ‘부사’                       adverbium (라틴어)

междометие ‘감탄사’             interjectio (라틴어)

выглядеть ‘~처럼 보이다’       aussehen (독일어)

православие‘정교’                ὀρθοδοξία (그리스어)

азбука ‘알파벳’                      ἀλφάβητος (그리스어)


развитие는 독일어 Entwicklung의 조어적 번역차용어이다. ‘생성, 발전, 이동’ 의미의 접두사 ent-는 러시아어 접두사 раз-로, 어근 -wickl-은 -ви-로, 명사형 접미사 -ung는 -тие로 번역하여 만든 단어이다. 러시아어 학술 용어 중에는 라틴어 기원의 조어적 번역차용어가 많다. 가령, наречие는 라틴어 adverbium에서 ‘부가’의 접두사 ad-는 на-로, 어근 verb-는 реч-로, 명사형 접미사 -ium은 -ие로 번역하여 만들었다. 조어적 번역차용은 러시아어 신조어에, 특히 인위적인 교회슬라브어휘, 곧 의사교회슬라브어휘(квазиславянизм)[1]를 만드는 데 활발히 활용된 방식이기도 하다.


[의미적 번역차용어] 번역차용어를 대표하는 또 다른 유형으로 의미적 번역차용어가 있다. 이 차용의 방식은 외국어 단어의 의미만을 차용하는바 ‘어의(語義)차용’이라고도 불린다.


(2) 러시아어                                         원어

вкус ‘취향’                                      got (프랑스어)

трогать ‘감동시키다’                       toucher (프랑스어)

гвоздь ‘하이라이트’                        clou (프랑스어)

тонкий ‘세련된, 예민한’                  fin (프랑스어)

живой ‘생기 있는, 발랄한’               vif (프랑스어)

плоский ‘평범한, 무미건조한’          plat (프랑스어)

ограниченный ‘우둔한, 어리석은’   borné (프랑스어)

утончённый‘세련된, 우아한’           raffiné (프랑스어)

скачок ‘질적인 급변, 약진’              Sprung (독일어)

картина ‘영화’                              picture (영어)


의미적 번역차용어가 형성되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기왕에 존재하는 어떤 단어가 외국어 단어와 의미적 공통성을 지닌다면 그 공통성을 토대로 외국어 단어의 또 다른 의미(대개 전이적 의미)를 흡수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러시아어 вкус가 동일한 일차적 의미(‘맛’)을 지니는 프랑스어 got의 영향으로 18세기 말부터 ‘취향’의 의미를 표현하게 된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건드리다’를 의미하던 трогать도 프랑스어에서 유사한 의미를 뜻하는 toucher의 전이적 의미를 흡수하면서 그 이전에는 없었던 ‘(마음을) 건드리다, 감동시키다’의 의미를 가리킬 수 있게 된다. гвоздь는 원래 ‘못’의 의미만을 지녔으나 프랑스어 상응어 clou의 전이적 의미(‘(공연,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를 흡수함으로써 19세기 말부터 러시아어에 гвоздь сезона(‘이번 시즌의 하이라이트’), гвоздь выставки(‘전시회의 하이라이트’)와 같은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어에서 조어적 번역차용어의 기원은 비교적 다양한 반면, 의미적 번역차용어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것들이 많다. 특히, 상당수가 프랑스주의(Галломания)[2]가 만연했던 18세기 중후반부터 19세기 초에 차용된 것들이다. 동시대인이었던 카람진의 “옛 단어에 새로운 의미 부여하기(давать старым некоторый новый смысл)”[3]라는 유명한 조언은 바로 의미적 번역차용의 방식을 가리킨다. 당시 러시아 귀족사회의 제2의 모국어였던 프랑스어로부터 이 방식을 활용한 의미적 번역차용어가 활발히 양산되었던 것이다.

의미적 번역차용은 기존의 러시아어휘를 활용하는바 차용어가 불러일으키는 반감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듯도 보인다. 그러나 19세기 초 러시아 지성사회를 휘감았던 언어논쟁에서 시시코프 진영은 모든 종류의 프랑스어적 표현들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이러한 프랑스어 차용어에는 어휘적 차용어뿐만 아니라 의미적 번역차용어도 포함된다. 의미적 번역차용의 방식이 모국어 단어의 본래적 의미를 변질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울러 (직접 차용이든 의미적 번역차용이든) 외국어의 영향이 혁명 사상과 같은 외래의 위험한 생각을 주입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밖의 유형] 번역차용어 중에는 직접 차용과 번역차용의 방식을 혼합한 ‘부분적 번역차용어’도 있다. 이때, 주로 어근(어간)은 직접 차용되고, 접두사나 접미사가 번역차용의 대상이 된다.


(3) 러시아어                                               원어

телевидение‘텔레비전’                         television (영어)

гуманность ‘인류애’                              Humanität (독일어)

антитело ‘항체’                                    anticorps (프랑스어)

трудоголик‘일중독자’                           workaholic (영어)


телевидение는 영어 television의 앞부분은 직접 차용하고 뒷부분 vision만을 러시아어 단어로 번역함으로써 만들어진 부분적 번역차용어이다. гуманность도 독일어 Нumаnität의 앞부분 human은 гуманн으로 음차하고 뒷부분 -ität은 접미사 -ость로 번역한 부분적 번역차용어이다.

‘성구적 번역차용어’는 구나 관용적 표현의 구성성분 각각을 번역함으로써 이루어진다.


(4) 러시아어                                                                원어

не в своей тарелке ‘마음이 편치 않다’                 ne pas être dans son assiette (프랑스어)

между собакой и волком ‘개와 늑대 사이’          entre chien et loup (프랑스어)

слепое повиновение‘맹종’                                 blinder Gehorsam (독일어)


러시아어 관용구 не в своей тарелке는 프랑스어 관용구의 각 구성성분을 러시아어로 번역한 것이다. ‘접시’라는 명명의미 외에 ‘상황, 상태’의 의미도 지니는 프랑스어 assiette를 동일한 명명의미를 지니는 тарелка로 직역한 것이 특징적이다. между собакой и волком(‘개와 늑대 사이’)는 20세기 러시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사샤 소콜로프(Саша Соколов)의 중편 제목으로도 유명하다. 이 관용구는 пора меж волка и собаки(‘늑대와 개 사이의 시간’)이라고도 표현되는데[4], 두 표현 모두 프랑스어 관용구 entre chien et loup의 번역차용어이다.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이 안 되는 시간, 곧 ‘황혼, 석양’을 가리키며 우리말에도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표현이 존재한다.

‘부정확한 번역차용어’는 외국어 단어의 형태-의미구조를 잘못 이해함으로써 출현한다. 식물명 орлик(‘매발톱꽃’)은 라틴어 aquilegia의 번역차용어지만 라틴어 단어의 구성을 오독함으로써 만들어졌다. aquilegia의 실제 어원은 aqua(‘물’)이지만, 이를 aquila(‘독수리’)의 파생어로 간주하여 орёл(‘독수리’)로 번역한 것이다.


[동의어, 다의어, 동음이의어의 출현] 번역차용은 어휘를 풍요롭게 하는 수단이면서 이와 동시에 동의어, 다의어, 동음이의어가 출현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조어적 번역차용은 주로 동의어 출현에 관여한다. 러시아어에는 직접 차용과 번역차용이 모두 이루어지면서 형성된 동의어들이 있다. 가령, 러시아어로 ‘알파벳’을 뜻하는 두 단어 алфавит과 азбука의 관계가 그러하다. алфавит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알파벳의 명칭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어 ἀλφάβητος의 어휘적 차용어이다. 반면, азбука는 같은 그리스어 단어의 조어적 번역차용어이다. 이 그리스어 단어는 그리스문자의 첫 두 글자의 명칭(‘알파(ἀλφα)’, ‘베타(βητα)’)을 조합한 것인데 이를 러시아어 알파벳의 첫 두 글자를 가리키던 옛 명칭(‘아즈(аз)’, ‘부키(букы)’)로 번역함으로써 형성된 단어가 азбука이다.

‘정서법’을 뜻하는 орфография와 правописание의 관계도 이와 유사하다. 전자가 그리스어 ὀρθογραφία의 어휘적 차용어라면, 후자는 동일한 그리스어 단어의 구성요소 각각을 러시아어로 번역한 조어적 번역차용어이다. 그런가하면 동일한 어원을 지니는 어휘적 차용어와 번역차용어가 의미적으로 분리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프랑스어 divertissement(‘기분전환, 막간의 여흥’)로부터 조어적 번역차용어 развлечение와 어휘적 차용어 дивертисмент가 만들어졌는데, развлечение는 ‘기분전환, 오락’을 의미하고 дивертисмент는 ‘막간공연’의 의미를 표현하는 전문적인 극 용어로 정착하였다.

그런데 조어적 번역차용어와 어휘적 차용어가 모두 형성 된 경우, 조어적 번역차용어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어휘적 차용어에 의해 밀려난 경우도 많다. 과거에는 동일한 어원의 조어적 번역차용어도 사용되었으나 현대 러시아어에는 어휘적 차용어만이 살아남은 사례로 아래의 것들이 있다.


(5) 직접 차용어                             조어적 번역차용어                           원어

астрономия‘천문학’                    звездозаконие                     ἀστρονομία (그리스어)

философия‘철학’                       любомудрие                         φιλοσοφία (그리스어)

патриарх ‘대주교’                       отценачальник                     πατριάρχης (그리스어)

бухгалтер ‘회계사, 경리’             книгодержатель                   Buchhalter (독일어)

нейтралитет ‘(국제법) 중립’       посредность                          Neutralität (독일어)


의미적 번역차용어는 다의어, 동음이의어의 출현과 관련이 깊다. 하나의 단어가 새로운 어휘의미를 지니게 되는 과정은 의미적 상관성의 정도에 따라 다의어 혹은 동음이의어의 출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건드리다’를 의미하던 трогать가, 프랑스어 toucher의 의미적 번역차용어서로서 ‘(마음을) 건드리다, 감동시키다’를 표현하게 된 것은 한 단어의 다의성의 확장으로 간주된다. 이에 반해, 러시아어 утка(‘오리’)가 동일한 명명의미를 지니는 프랑스어 canard의 전이적 의미 ‘유언비어, 날조’를 흡수하게 된 상황은, 두 의미의 낮은 관련성으로 인해 동음이의관계로 규정되곤 한다. 마찬가지로, 고대교회슬라브어 차용어 среда(‘수요일’)과 프랑스어 milieu의 의미적 번역차용어 среда(‘환경’)도 동음이의어로 간주된다.


연관 표제어


고대교회슬라브어(старославянский язык, old church slavic), 교회슬라브어휘(славянизм, church slavic words), 시시코프(А. Шишков, A. Shishkov), 언어논쟁(споры о языке, dispute about language), 차용어(заимствование, loan word), 카람진(Н. Карамзин, N. Karamzin), 프랑스어 차용어(галлицизм, gallicism)


참고자료


길윤미. “언어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 언어 발전에 미친 영향 연구: 19세기 초반 러시아의 언어논쟁을 중심으로.” 러시아어문학연구논집 73. 2021.

Жеребило Т. В. Термины и понятия лингвистики: Лексика, Лексикология, Фразеология, Лексикография. Назрань, 2012.

Карамзин Н. М. “Отчего в России мало авторских талантов”(1802). Избранные сочинения в двух томах. М.,Л., 1964.

Фасмер М. Этимологический словарь русского языка. М., 1987.

Шанский Н. М, Иванов В. В. Современный русский язык. М., 1987.